블로그를 옮겼습니다. 여기 있는 글들은 보관할 것이지만 앞으론 coldcavern.tistory.com으로 와주세요. 지금까지 들러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주저 앉았는지 모른다 햇살에도 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걸려 자잘한 잡품들을 길거리에 늘어 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행인들을 응시하는 잡상인처럼 나는 무릎을 포개고 앉아 견뎌온 생애와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 해가 지고 구름이 떠오르고 이윽고 밥풀처럼 입술 주위로 묻어나던 싸라기눈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나는 석유 난로 그을음 자욱한 포장마차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반찬 삼은 저녁을 먹는다 둘러 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살바람에 찬 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여림, 나는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