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최금진, 잠수함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6. 30. 10:36
나는 잠수함,
네가 사는 물 밖으로 나가지 못 한다
자꾸 아래로 침잠하는 버릇, 아무 데도 정박할 수 없구나
문어발처럼 뻗은 섬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용암을 토하는 화산의 아가리가 얼마나 깊은지
나는 네가 그런 어둡고 탁한 깊이를 평생 모르고 살아가길 바란다
어느 날엔가 그냥 장난처럼 낚싯대를 가지고 와
그 끝에 잠시 파닥거리는 웃음을 미끼로 달고서
재미있게 하루를 드리웠다 가거라
그때 나는
온통 철갑으로 둘러진 무거운 몸을 죄악처럼 입고서
네 그림자 밑을 조용히 스쳐 지나갈 것이다
녹슨 쇳조각 떨어져내리는 폐선처럼
심해의 어둠에 나를 끓어앉혀야 할 일만 남은 것처럼
미안하다, 너에게 가지 못 한다
나는 잠수함,
물 밖으로 꺼내놓은 작은 잠망경 하나에
행복한 너를 가득 담고서 네 앞을 지나간다
깊은 해구 속에서
무시무시한 귀신고래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나는 및바닥을 산다 그리고
이제 간신히 너 하나를 통과해 가고 있다
미안하다,
너에게,
다신 가지 못 한다
(최금진, 잠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