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정재학, 모노포니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7. 17. 04:18

모든 색깔을 잃고 나는 물이 되어 네게로 흐르고 있었다 난 하나의 벽이기도 했고 눈동자이기도 했고 수화기이기도 했고 손가락이기도 했고 넌 한 뼘이기도 헀고 틈새이기도 했고 오후이기도 했고 입구이자 출구이기도 했고 잠시라도 네게 고여 있기 위해 소나기처럼 잠이 든다 너의 그림자가 되어


아무 증명도 필요 없었다

비에 젖은 우산처럼


숨을 길게 내쉬다가 나는 그만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너에게 가는 길은 모두 건반이 되고 너는 한 음 한 음 정성껏 연주한다 잠시라도 네게 고여 있고 싶었지만 낮은 음으로 너무도 빨리 흘러 너는 먼발치에 있었고 네가 누르는 높은 음역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나는 더 이상 흐르지 못 했다 내 몸은 증발하기 시작하고


너는 나의 모든 음을 듣지 못하고

나도 나의 음을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정재학, 모노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