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니, 나선의 감각-목소리의 여행
이것은 흐릿한 목소리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공간 속에서 솟아오르는. 더없이 날렵한 선분들.
회오리치는 빛의 뿔. 섞이며 자리를 바꾸는 문장들. 등장인물은 여럿이다. 장면은 파열한다. 거울은 어둡다. 먼지는 흩날린다. 그림자는 무모하다. 천은 부드럽다. 하늘은 흔들린다. 나무는 아름답다. 의자는 낡아간다. 의지는 단호하다. 거리는 길어진다. 상상은 끝이 없다. 시간은 저항한다. 구름은 증발한다. 기억은 모호하다. 손가락은 명료하다. 열매는 익어간다. 말은 줄어든다. 나는 이동한다. 너는 사라진다. 이것은 회전하고 이것은 끝없이 모양을 바꾼다. 공간은 확장된다. 속도는 증가한다. 너는 낡고 큰 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다. 나서는 순간부터 네 자신의 죽음과 동행한다. 어둠은 짙어진다. 목소리는 가까워진다. 너는 전진한다. 너는 비약한다. 너는 비상한다. 너는 휘돌아나간다. 몇 겹의 눈동자. 몇 겹의 동심원. 몇 겹의 그림자. 몇 겹의 목소리. 무수한 겹과 겹을 통과하여. 시간과 거울과 얼음과 물음을 두 손에 쥐고 날아가라 수 있는 한 높이높이. 나뭇가지들이 자라나듯이. 넝쿨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듯이. 끊이지 않는 얼굴이 되어. 순간을 잊는 방식으로 순간을 살아가듯. 더없이 검은 말을 따라. 한없이 희미한 걸음으로. 방향 없는 방향을 향해. 기억으로 버리듯 기억을 되살리며. 위로 위로 마음의 위로. 휘날리는 깃발처럼 흔들리는 눈길처럼. 달려나가는 속도를 넘어. 사라지듯이 다만 사라지듯이. 목소리는 떠돈다. 모래는 흩어진다. 바람은 요원한다. 물은 차오른다. 창문은 열린다. 심장은 뛴다. 담은 허물어진다. 골목은 발견된다. 낱말은 교환된다. 일요일은 반복된다. 사물은 암시한다. 회상은 이어진다. 울음은 진동한다. 이미지는 증식한다. 회전하면서. 멀어지면서. 너는 이동한다. 나는 사라진다.
(이제니, 나선의 감각-목소리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