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이운진, 도망가는 사랑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7. 5. 11:39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이운진, 도망가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