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박 준, 그해 봄에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8. 12. 08:46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박 준, 그해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