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나희덕, 다시, 다시는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7. 29. 17:34

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들어 살지 않게 된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어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은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은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나희덕, 다시, 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