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김소연, 너의 눈

괴물도, 물개도 아닌 개물 2016. 6. 24. 16:00

네 시선이 닿은 곳은 지금 허공이다

길을 걷다 깊은 생각에 잠겨 집 앞을 지나쳐 가버리듯

나를 바라보다가, 나를 꿰뚫고, 나를 지나쳐서

내 너머를 너는 본다

한 뼘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어도

너의 시선은 항상 지나치게 멀다


그래서 나는

내 앞의 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 뒤를 느끼느라 하염이 없다


뒷자리에 남기고 떠나온 세월이

달빛을 받은 배꽃처럼

하얗게 발광하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너의 눈에

나는 걸어 들어간다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 보리라

꽃 피고 꽃 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숨어 살아보리라



(김소연, 너의 눈)